Mario del Mon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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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를 생각할 때에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미지로 떠오르는 인물은 파바로티일 것이다. 하지만 파바로티 이상으로 우리가 주목하고 다시금 눈여겨봐야 할 성악가가 있다. 바로 마리오 델 모나코이다. 특별히 클래식에 관한 관심이 많거나 다양한 음역대중에서 테너의 목소리를 선호하는 이들에겐 매우 신화이면서 전설과도 같은 성악가이다.

테너의 음역대 안에서도 소리의 질감에 따라서 크게 우리는 네 분류의 스타일로 보편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테너라는 말의 어원은 음악에서 최고 음역의 남성을 일컫는 말로서 라틴어 Te neo(지속하다)에서 유래되었고 테노레 레제로(tenore leggiero)는가볍다라는 뜻의 레제로의 속성만큼이나 가볍고 경쾌한 소리의 질감에 따라 나누어지며 테노레 리리코 (tenore lirico)는 레제로 보다는 무게감이 있을 수는 있으나 밝고 따뜻하며 서정적인 스타일의 소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단계별로 살펴보았을 때에 테노레 스핀토 (tenore spinto)는 찌르다 라는 의미의 스핀토의 말뜻처럼 강렬하며 강력한 소리의 질감을 표현하고 있다.

대다수 성악가은 스핀토 정도만 되어도 굉장한 무게감과 소리의 질감들에 넋을 나가곤 하지만 테노레 드라마티코 (tenore drammatico)에 비하면 스핀토 또한 그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마리오 델 모나코는 이렇게 보편적으로 네 단계에 걸쳐 구분해 볼 수 있는 테너의 스타일 중에 역사상 가장 강력하며 황금 트럼펫으로 불린 최고의 드라마티코 였다. 물론 그의 발성법에 관한 에피소드와 무대 위에서 종횡무진 하던 그의 사운드는 전설처럼 우리들에게 아직도 전달되고 있다. 마리오 델 모나코는 1915년 이태리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물론 피렌체가 아닌 가에타에서도 출생되었을 거란 추측 또한 가지고 있다.

마리오 델 모나코는 처음엔 바이올린을 시작으로 음악을 접하였으나 후에는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성악을 공부하게 된다. 재미난 점은 그의 첫 데뷔는 1941년 밀라노의 푸치니 극장에서 <나비부인>으로 데뷔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유럽은 세계 2차대전을 겪고 있었고 마리오 델 모나코는 군 복무 시절 첫 데뷔를 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 후 전쟁이 끝난 뒤 1946년 베로나 페스티벌에서 <아이다>의 라다메스 역을 맡아 대성공을 이루었고 그 이후 지속적인 러브콜이 쇄도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의 웅장하며 강렬한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는 그의 스승인 멜로키의 영향이 많았다.

그간의 벨칸토 발성과는 다르게 목소리를 강질의 소리로 단련하여 강철 성대와도 같은 매우 강한 발성법을 그를 통해 단련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멜로키 발성은 마리오 델 모나코 이후 세계적으로 이러한 발성법으로 꾸준히 그리고 컨디션을 타지 않으며 연주를 해내는 성악가들의 수가 적은 만큼 누구에게나 적용이 쉬운 발성법은 아니었다. 이처럼 멜로키 발성을 완벽하게 구연하여 강질의 소리를 내던 그에게도 위기는 찾아온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1963년 교통사고를 당하고 20여 일을 산소호흡기를 달고 매우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복 기간 중 간염까지 찾아옴으로 그는 체중이 20kg이 빠지는 등 다시 그가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고 대중들과 미디어도 매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하지만 그는 1968/69 오페라 시즌을 통해 무대에 성공적으로 복귀하였고 1974년 무대에서 은퇴를 하였다. 이처럼 그는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도 대중들 앞에 강인하고 그만이 구연할 수 있는 강렬한 목소리를 통해 대중들을 휘감았으며 1950년대 오페라계에 한 획을 긋는 인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마리오 델 모나코는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였던 마리아 칼라스, 레나타 테발디의 상대역을 도맡았었고 유럽을 넘어 메트로폴리탄에서도 훌륭한 공연으로 세계적 테너로 발 돋움 할 수 있었다.

61세의 나이까지 무대에 오른 그를 회상해 본다면 성악가로서도 상당히 롱런 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한국에도 좋은 성악가들이 무대에 오르고 또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지만 오래도록 좋은 소리를 유지하며 무대에 오르는 성악가들을 참으로 기억하기 어려운 국내 현실 또한 어떠한 면에선 아쉬운 점들도 많이 느껴진다. 그의 주요 레파토리는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 로 손꼽히고 있으며 그가 숨을 거둔 1982년 그의 장례 절차에서도 오텔로의 화려한 의상과 모나코가 함께 영원히 잠들었다고 한다. 글을 마치며 그의 화려하고 웅장한 목소리를 함께 감상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