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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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박은하

현재 거주지 : 강원도 인제

태어난 곳 : 경기도 안양

아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 

어릴 때부터 미술은 곧잘 했지만 화가가 되고 싶다 생각한 적은 없었다. 집이 망했고 미술로 대학을 가는 것은 돈이 든다고 들었으니까. 인문계 여고에 들어가 규율이며 등수 경쟁에 따라가지 못하던 와중 우연히 봉사활동 갔던 장애인 화실에서 그림으로 도피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결국엔 그림은 끊을 수가 없었고 운 좋게 미대에는 들어갔지만 집은 학비는커녕 생활비 한 푼 바랄 형편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진 상황에서 작가라는 정체불명의 것을 꿈꿀 여력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질긴 연인지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 다가오는 기회들을 열심히 쫓다 보니, 2007년 미대를 졸업한 경제 호황기의 순진한 수혜자 중 하나로, 나는 ‘어이쿠’ 하며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어 버렸다. 돌풍에 휩쓸려 뜀틀20단을 넘어버리고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지만, 죽기야 하겠냐는 마음으로 끈질기게 뛰고 또 뛰는 그런 느낌.

추구하는 작업 스타일 

“시각을 통해 비시각적 울림을 생성하고, 사실적일 때조차 다차원의 의미를 낳으며, 개인적 상징일 때 조차 다수적인 의미를 통해 보편적 울림을 생산하는” 그런 작업을 열망한다. -<Edvard Munch> 옮긴이 윤세진의 서문 참조-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OR 전시는 무엇인가요 

2010년 개인전. 작업을 시작한 2007년 이래로 나는 한꺼번에 너무나 다양한 경험을 했고 방황을 했고, 그 결과 작업이나 인간관계 등 여러 가지가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여있었다. 이를 어느 정도 정리하고 스스로를 추스르는 새로운 시작이 된 전시였다.

어떤 작가 OR 사물에서 영감을 받았나요 

처음으로 예술가의 태도와 언어를 보여준 작가는 이기봉 교수님이며, 그의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큰 재산이다. 작업활동을 하면서 만난 몇몇 작가들, 평론가들, 큐레이터들에게서도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한다. 많은 예술가들을 존경하지만, 특히 뭉크, 고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문화 컨텐츠를 접하지만, 역시 책에서 받는 영향이 가장 강하다. 나는 결코 다독하는 편은 아니지만 깊게 공감했던 책은 한 문장, 한 구절을 소중히 한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영감을 받는 대상은 내가 만나는 모든 현실들이다.

작업에 열정을 주는 존재는 무엇인가요 

견딜 수 없는 상황들. 참을 수 없는 의문들.

작품을 바라본 사람들에게 당신의 작품이 어떻게 비춰지기를 바라나요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다. 솔직히 우문이라고 생각한다.단지, “예술은 감상자에게 기초적인 교육대신에 실증적인 의미에서, 정신적인 경험을 요구한다”는 타르코프스키의 글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20대 시절을 한 문장으로 표현 한다면 

한 번 겪어 족한 시절.

작가님의 작품에는 플라나리아와 같은 띠들은 어떠한 의미인가요 

이전 작업에서 마블링에 형상적 베이스를 두고 있는 유동적 패턴 ‘플라나리아(planaria)’는, 사무실, 카페, 도심 속 거리 따위의 현대적 공간 속에서 사회 시스템과 충돌을 일으키는 현대인들의 숨겨진 파토스(Pathos, 주로 타성에 젖은 물질적 욕망 자체)로서 갈등을 일으키는 하나의 주체적 역할이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패턴은 사람과 상황이라는 주체들이 빚어내는 대립구조를 거들어주는 보조적 역할로서 작용한다. 물론 부정적이거나 혹은 긍정적인 인간의 어떤 정념(情念)을 가시화한 성질은 이어지지만, 각 작업의 내용에 따라 패턴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하고 혹은 아예 부재하기도 한다. 2012년을 기점으로 현재는, 사회 현실과 반응하는 내 과거의 기억들을 심리적 풍경으로 형상화하는 붓과 같다.

식민지 코스트코와 같은 작가님의 작품 활동들은 대중들에게 친숙한 공간에 대한 환기를 일으켜주고 있는데요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과 직접적으로 한 기업을 놓고 작업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Train in Costco_캔버스에 유채, 패브릭에 아크릴채색_320×600cm_2009>를 전시했던 ‘新식민지-코스트코’展 은 브랜드, 즉 특정 기업자체에 대한 작업이라기 보다는 그 공간이 시각적으로 암시하는 사회적인 성격을 반영한 것이었다. 코스트코에 갔을 때 자동차 타이어를 판매하는 곳의 디스플레이를 보며 ‘기차’의 이미지를 연상했다. 이는 영국 산업혁명 때 인간의 욕망을 원료로 자본주의를 향해 힘차게 달리는 기차와 맞물렸다. 대형마트의 진열대로 이루어진 기차의 형상은 그대로 현실의 거울이 된 것이다.

최근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인가요 

2010년에 3개월간 했던 유럽의 미술관 기행. 이 경험으로 나는 자신의 구상성에 대한 얕음을 깨달았다. 더 사실적인 것을 구현하기 위해 이 얕음의 심저를 깨부수는 것이 직면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슬럼프가 있을 때에 어떻게 극복 하시나요 

딱히 극복하지 않는다. 진창이 되더라도 바닥을 쳐봐야 비로소 뭔가에 닿을 수 있다.

최근의 관심사는 

작업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일본어. 거의 문맹이지만 듣고 말하는 것이 재미있다. 한국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비슷한 발음의 한자도 많지만 일본어가 아니면 결코 전달할 수 없는 감정이나 느낌을 마주하는 것이 흥미롭다. 외국어를 알아갈 때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나라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성을 발견하는 기쁨. 영어가 막 재미있어졌을 때의 딱 그 단계라 요즘 좀 빠져있다.

계획중인 프로젝트는 

일단은 올 5월에 닥친 전시.

작업 준비물 이외에 작업 할 때에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노트, 펜, 음악, 마실 물, 시계.

살면서 가장 강력한 경험은 

여기서는 결코 말 못할 경험.입밖에 내기 어렵지 않은 경험 중에서라면 8초간 떨어졌던 번지점프와 스탕달 증후군.번지점프를 하기 전에는 죽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스탕달 증후군을 경험하기 전까지 미술은 사기라고 생각했었다. 이 경험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없다.

예술가에 있어 꼭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인용하여) 비관할 줄 아는 이성과 낙관할 줄 아는 의지.

아티스트로서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사기꾼과 구도자 사이의 좁다란 길을 걷는 것. 한발 삐끗하면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자신이 정의하는 예술이란 

6년 정도 그림 그리고 ‘예술’을 정의한다는 건 자신을 지나 과신이겠지만, 잠정적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예술에 관한 하나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감히 입밖에 내어 보자면,예술이란 사람들에게 공감[共感]을 확장해 나아가는 일이다. 예술가의 의식이 태도가 되고 태도가 형상이 되어 감상하는 이들에게 의미를 전달하며 이는 실천이 되어 변화를 부른다고 생각한다. 느리지만 확실한 달팽이의 자욱처럼 어느새 거기에 있는 나를 지금 깨닫는 것.

앞으로의 꿈

(앞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처럼) 내가 추구하는 예술, 정의하는 예술을 구현하는 것. 그리고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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