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ha Kim

ksh9

이름 : 김시하

현재 거주지 : 경기도 남양주시

태어난 곳 : 충청도 홍성

아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

어머니 탓, 손재주가 많으신 어머닌 직장생활 중간중간 부업을 했는데 그게 참 종류도 다양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조화 만드는 작업이에요. 작은 방 가들 꽃잎과 잎사귀 수술을 만드는 재료들이 쌓여 있었고 그걸로 조화를 만드셨었는데 어렸을 때 엄마 도와서 저도 만들곤 했거든요, 그게 지금 작업 중간중간에 제가 조화를 쓰면서 가짜와 진짜를 고민했던 계기였던 것 같아요, 다 만들어지면 거기에 방향액체를 수술에 조금 묻히거든요, 그게 항상 신기했어요, 진짜 꽃이 아닌데 진짜 같기도 하고… 나중에 생각하면 그게 시발점 같아요, 정작 어머닌 제가 예고 가겠다니깐 심하게 말리셨지만…그림을 잘 그려서  초등학교 졸업 무렵 건축 전공하던 저의 사촌오빠가 미국에서 들어와서 저를 그림을 가르쳤는데 이건 역효과를 내었구요, 그 바람에 그 어린 나이에도 그림보다는 조각을 해야지…했죠…

추구하는 작업 스타일

스타일의 의미가 형식이라면 제한 없어요, 그때그때 원하는 걸 표현하기 위해선 어떤 재료든, 형식이든, 스타일이든 고수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동시적으로 각자 다른 여러 개의 스타일을 전개하는 편입니다.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보다 조금 더 힘이 들더라도 여러 가지의 스타일을 같이 가는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예를 들면 파이프 작품의 장소성과 스폰 등의 문제로 작품 구현에 제약이 따라요, 한마디로 자주 보여드릴 수 없는 작품이죠, 그 공백기에 다른 작품들을 하는 거죠.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OR 전시는 무엇인가요

국립현대미술관 일상의 연금술 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 처치 갤러리 전시요. 저의 첫 해외전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외국 전시 스텝의 안전추구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요.조각전공이다보니 사실 수시로 다치고 베이고, 멋모르던 학창시절엔 실수로 제 머리카락을 홀라당 태워버리기도 했으니까요, 파이프 작품을 구현했는데, 스텝이 안전 복 챙겨입고 용접 하나 하는데 모든 안전 장비, 중간 차단 설비까지 갖추고 모자에 옷에, 그런 준비 과정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더라구요, 아티스트의 안전이랄까…저희는 왜 그냥 막 무대뽀로 덤비면 좀 멋있게 보고 그런 게 좀 있잖아요,다시한번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어떤 작가 OR 사물에서 영감을 받았나요

차갑고 냉정한 것, 제가 꽃이나 작은 오브제들을 다룬 작품도 있어서 종종 작품이 예쁘지 않냐는 소리를 듣는데요, 그거 다 가짜에요, 정말로는 외관과 모습만 그래 보일 뿐 파이프나 다름없이 차갑죠, 그렇게 보면 오히려 따듯한 것이 파이프에요, 생명을 지녔다는 가정이 있으니까, 다른 사물들은 만들어진 가짜죠, 그런 것들에 관심이 있어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 그렇게 꿈꾸지만 냉혹한 현실에 가깝죠.

작업에 열정을 주는 존재는 무엇인가요

현실적으로 국제적으로 저명한 작가들을 만나 대화하는 일이 쉽진 않으니까, 그들을 다루거나 또는 다방면으로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요, 그리고 가끔 그들과 공통되는 저의 생각을 발견하기도 하고, 저를 뛰어넘는 훌륭한 생각을 발견하기도 하고,  아티스트 뿐은 아니구요, 철학가,사회학자, 소설가, 음악가…기본적으로 세상에는 저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들과 영감도, 열정도 공유합니다.그들을 부러워 하고, 자랑스러워 하고, 질투하면서 저도 성장해나가는 거죠, 너무 학생 같은가요??? 전 착한 학생이었어요, 열심히 말 잘 듣고 조용하다가 결정적일 때 딴 곳에가 있는…

작품을 바라본 사람들에게 당신의 작품이 어떻게 비춰지기를 바라나요

모든 관념이 깨졌으면 좋겠어요, 이러니까 이래야지, 이런 식의 모든 것들, 놀라운 건 예술 안에서조차도 이런 관념이 통용된다는 거에요…나는 내 작품을 통해 위안이나 치유를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음악이 훨씬 더 강력하게 도움이 되어줄 테니까, 소통하려고 예술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그저 내 작품이 우리의 다른 이면, 삶의 이면이기도 하지만 정신의 다른 이면,을 보여주는 그런 ‘어떤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어떤 것’ 은 내 몫이 아니에요. 보는 관객의 몫이지…그 ‘어떤 것’ 까지 설명하고 규정 지워줄 생각이 나에게는 조금도 없어요.

20대 시절을 한 문장으로 표현 한다면 

사랑보다, 돈보다, 가족보다, 예술이 재미있었던 시절.

파이프를 이용하여 작업을 하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 합니다

파이프는 여성성을 내포한 남성성이랄까, 생명을 지닌 차가움이잖아요, 소재가 맘에 들었다는 게 첫번째겠죠, 그리고 다음이 유기적인 생명체로 느껴진다는 점이었어요, 공간과 건축에 기생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소재를 담고선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죠, 그런 상징성이 맘에 들었어요,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저 강한 소재를 요리할 수 있게 된다면 저 역시도 살아낼 수 있겠다 라는  생명성이었죠, 그래서 제목이 <꽃피는 젊은 예술> 이에요, 저의 욕망의 매개체엿죠. 시각적 의미가 사실 더 강한 작품이에요, 그걸 알고 한 거고, 그렇게 한 거죠.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삶과 이상의 간극 , 부조리, 혼돈, 그로 인해 발생되는 space, 개인적으론 삶과 예술의 경계이겠네요, 나 자신이 예술을 하면서도 도통 이게 해결이 안나요, 이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제 작품에 대해 길게 애기하면 제 작품은 설명한 그대로의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설명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생각하려 하지 않죠.

중국에서의 작업 과정 중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말씀 부탁 드립니다

제가 중국에 간게 8년전이네요, 모든게 고생스럽죠, 가장 힘든 건 설치미술에 대한 이해도 부족이였어요, 미술시장이 발달하긴 했지만 설치 미술은 해외로 건너간 일명 블루칩 중국 작가들이 하는 쪽이었고 보편화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당연히 그런 시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도 찾아 드는 곳이니 참 설 자리가 없었죠. 그래서 농담처럼 북경의 유일한 한국인 설치 작가입니다, 라고 인사를 했으니까요, 예술가에게 사실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전 사진도, 조각도, 설치도 하는데,,, 그렇지만 그 당시에 하고 싶었던 게 설치미술과 공공미술이었으니까요,그런 와중에서도 조금씩 개념을 넓혀 작업을 해나갔어요, 무엇보다 대형공간이 많았으니 설치 작가로 공간감을 한 번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어서 좋았고요. 귀국 바로 전에 갤러리 야외 공간에서 작업을 설치했는데…이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설치일이 정말 추운 날이었어요, 온도는 괜찮았는데 바람이 거세서 (중국의 바람은 일명 칼바람이라고 해요, 밖에서 5분을 있기가 힘들죠,)뉴스에서도 조심하라고 하고, 그날 따라 설치 스텝도 안 나타나고, 발 동동 구르다. 설치를 했거든요, 야외에서 제작하는데 인부들 셋을 부리느라 저도 초죽음이 된 건 물론 이구요, 주어진 이틀 안에 설치를 끝내야 했는데 ,설치 작품이란게 설치일 까지는 방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상황이 되거든요, 그렇게 기다리던 설치를 끝내고 작업실로 돌아오는데 발걸음이 너무 가벼운 거에요,, 그날따라 택시도 안 잡히고, 버스도 만원이고, 결국 한 시간 반을 걸어서 갔거든요,, 가면서 시장을 들려 과일도 사구요…딱 도착해서 난롯가에 앉았는데..제 후배 말이 제 얼굴에서 빛이 나더래요. 사실 그랬어요, 정말 춥고 힘든데, 너무 행복했거든요,무슨 에너지로 작업실까지 걸어갔는지 지금도 의문이에요. 나중에 같이 작업한 스텝이 하는 말이 ‘진시하(중국이름) 넌 바람을 이긴자다.’ 라고 해서 막 웃었던 기억이 나요.

슬럼프가 있을 때에 어떻게 극복 하시나요

가끔 영감이 막히면 온갖 곳을 돌아다닙니다. 설치 작가로 장점은 어느 장소, 어디서든 영감을 캐치하는 것에 비교적 훈련이 잘되어 있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 전시, 클럽, 서점, 혼자 조조 영화나 공연도 많이 보구요, 중국에선 도시를 돌아다녔어요, 건축물들, 높은 빌딩, 등등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죠,  꼭 장거리 여행을 다니지 않더라도 날 좋은 땐 무작정 책이나 피크닉 용품 챙겨 들고 나가기도 하고, 까페에 혼자 드로잉북 하나 들고 앉아 있기도 하구요, 아이디어가 막힐 땐 혼자 있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란 생각이 듭니다.그리고 이 때 유의할 점이라면 일반적인 삶이 끼어들 자리를 주면 안된다는 거에요,,, 가장 기본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냥 샹활인데 이런 삶에 치중하게 되면 될수록 사실 예술적인 영감과는 조금 멀어지는 거 같아요, 쉴 때 자꾸 스멀스멀 이런 삶들이 다가오거든요,, 알게 모르게 침식당해요,그럼 무엇이 문제냐 하면 ,,,지금의 사회구조는 모든 게 자본 중심으로 돌아가거든요,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 곳이 예술계이니 계산이란 걸 하다 보면 자기비하로 빠지고, 신념을 약하게 하죠, 그리고 반대로 신념이 강할수록 상처받구요, 예술인도 사회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할 장치가 필요한데, 전 그걸 ‘다르다’ 에 두고 있어요. 현대인들은 다르다를 알면서도 다르다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 모순된 구조를 가지고 있죠.

최근의 관심사는

집단의 횡포, 무식함, 고정관념, 이상의 비현실성, 무지하게 작업 잘하는 몇몇 예술가. 가끔 꿈인지 실젠지 헷갈리게 하는 데자뷰나 잠에서 덜 깬 몽롱함….등등.

계획중인 프로젝트는

신작은 여름에나 나오게 될 거 같아요, 지금 준비중인 생각들이 더 구체화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되도록이면 신작제작완료 전에는 많은 것들을 자제하는 중입니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이 신작들과 제 사진 작품이 같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구요.

작업 준비물 이외에 작업 할 때에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조건 제 수첩, 얇은 노트, 형광펜이요, 모든 걸 기록해요, ,생각 , 아이디어, 일기 스케쥴, 봐야할 것, 들은 것, 하고 싶은 거, 해야할 것… 전에는 드로잉을 작푸모하할 욕심에 이쁜 드로잉북에 열심히 그려 클리어 파일에 끼웠는데 그러다보니 솔직하지 않더라구요, 지금은 수첩에 막 갈겨 써요, 정리하는 건 아니구, 저만 알아보면 된다는 생각…

살면서 가장 강력한 경험은

홍대에서 했던 개인전 때였어요, 그 때 지하에서 개인전을 했는데 수영장과 같은 구조물<예술가의 정원>을 제작했거든요, 나무 구조물로 틀을 만들었는데 규모도 있었던 터인데 지하라 환기가 전혀 되질 않았어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들어오는 사람마다 전시를 보려면 눈물을 쏙 빼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합판에서 나오는 냄새가 정말 심했거든요, 그런데 전 정말 재미있더라구요, 이전에, 이미지가 범람하지 않았을 시절엔 작품을 애타게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보고 눈물을 흘리거나 깊게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는데, 우리는 과연 그런가요, 저조차도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려 본적이 없어요,그 당시까지 제가 아, 정말 좋았다 라고 여기던 작품은 까미유 끌로델의 옥으로 된 작품 한 점과 윌리엄 켄트리지의 영상 뿐이었으니까요, 그 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던 거 같아요, 예술가가 모하는 사람이냐는 것을,지금도 계속 저한테 되물어요,예술가는 모하는 사람인지 너는 예술가인지, 하면서요.

예술가에 있어 꼭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자신에 대한 신념과 자기를 객관화해서 보는 능력이요. 신념이 있어야 창작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또 자기를 제대로 봐야지 그렇게 만들어낸 작품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알아보고 점검할 수 있기 때문에요, 신념만 있는데 후자가 없다면 그저 아집에 사로잡힌 광기어린 ‘광이’ 에 가까울 거라 생각해요, ‘광이’들이 주로 그러잖아요 아, 세상이 날 몰라, 세상이 나를 엿먹여, 거지같으니, 내 위대한 창조물 맛좀 봐봐라,,,, 등등,,, 물론 예술가에게도 세상아, 한 번 엿 먹어봐 하는 식의 태도도 필요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점검이 잘 된 예술가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로서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항상 나는 예술가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삽니다. 아티스트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아트를 하는 것에 가까워요, 목적과 욕망, 가치가 저 만치에 있는데 그걸 추구하지 않으면 무엇을 위해 살겠어요, 그게 나한텐 예술이었던 거죠, 바람이 있다면 이런 의미자체가 지워질 정도로 그냥 한 몸이 되는 겁니다.

자신이 정의하는 예술이란 

집단에 반하는 거, 집단은 우매해요, 대중이 아니라.. 집단이 만들어지고 고정 관념이 생겨나고 확인 없이 그 관념을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무의식 중에 따르게 되는,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 의심도, 저항의식도 없는 것, 사고 자체도 그래요, 어느 한 쪽에 기울어져 우르르 몰려가 그게 좋다고 찬양하는 거, 이런 모든 불확실한 것에 대항하는 거요.

앞으로의 꿈

생각 안해요, 지금은 해내야 할 일들이 있어요, 나머지는글쎄,, 내가 나중에 무엇이 될지 어떻게 알겠어요, 지금이 내 종착지가 아닌데, 굳이 꿈이라 표현을 하자면 꿈과 이상이 같은 선 안에 나란히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면서 걸어갈 수 있음 좋겠네요,그리고 현실적인 바람이자 꿈이라면 작품을 구현해줄 수 있는 솜씨좋은 테크니션을 만나는 운을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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