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바리톤 신금호

과연 오페라는 어려운 것일까 ? 오페라는 음악,연기,미술,무용,의상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구성 되어져 있는 종합예술이다.  오늘은 마법사 같은 오페라의 전도사 베이스 바리톤 신금호를 만나보았다.

Q. 안녕하세요 선생님 소개 부탁 드리겠습니다.

A. 저는 성악가 이면서 오페라 연출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창작작업을 하고 있는 신금호 입니다.

“베이스 바리톤 신금호는 성악가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닌 오페라 연출가 그리고 오페라 제작자로서 왕성한 활동중인 멀티플레이어로 보수적 성향의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독보적인 존재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과연 그의 히스토리는 어떠할까?”

Q. 처음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A. 고교시절 내신관리를 위해 음악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어요. 특별히 학내 중창단에 들어가면 점수보완에 도움이 되리라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게 되서 중창단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요. 어찌된 일인지 중창단 활동을 열심히 하다보니 담임 선생님의 미움이랄까요 어찌보면 학업에있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는 선생님의 깊은 뜻이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렇게 핍박받느니 제대로 한번 음악을 해보자라는 이유있는 반항심 이랄까요? 무작정 집에 통보를 하고 그 계기로 노래에 길을 두게 된 첫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 당시 베이스 바리톤 신금호의 담임 선생님이 없었더라면 현재 우리는 그의 노래와 그의 손을 거친 유쾌한 오페라를 만끽할수 있었을까? ”

Q. 연주자로서만이 아닌 연출가로서도 활동을 하시는것은 흔치않은 사례입니다. 그렇게 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A. IMF시절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유학을 갈 형편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액장학금을 주는 콩쿨같은 오디션에서 전액장학금과 생활비까지 보조를 받아 왕립음악원에 입학을 할 수 있었어요. 어찌보면 그런 기회가 없었더라면 유학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귀국후 연출가가 없는 어찌보면 참실하지만 오합지졸 처럼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이 있었어요. 누군가는 나서서 상황들을 정리해야만 하는 그리고 연출가의 역할을 필연적으로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죠. 영국에서 접하고 본 것들이 도움이 되었던걸까요? 제가 총대를 매고 컨셉을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죠바니를 엘비스 프리셀리로 설정해서 재구성을 했었죠. 다들 미쳤다 했지만 반응은 폭발적으로 좋았어요. 성악가이지만 오페라 연출가를 겸하게 된다는건 사실 연주자로의 이미지에 있어 리스크가 컷습니다. 하지만 그런걸 재고 움직이는 그런 성격은 아닌지라 일단 부딛쳐 보았던거죠.

“어느덧 그의 연출 이력만 7년, 참으로 짧은 시간은 아니다. 한번쯤 베이스 바리톤 신금호의 손길을 거친 오페라를 보게된다면 우리가 늘상상하던 지루함과 하품 연발의 오페라는 이젠 안녕…” 언젠가 독자들도 기회가 된다면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되어진 오페라를 꼭 보기를 적극 권장한다.”

“크레이지 오페라라는 타이틀의  모차르트의 돈죠바니, 이 포스터 한장만으로도 그의 독특한 발상들을 짐작 할 수 있지 않은가?”

Q. 성악가로 또 연출가로 활동을 하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오페라M 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시게 되셨는데요 오페라M은 어떤곳입니까?

A. 몸담고 있던 단체에서 불미스러운 이런저런 일들로 나오게 되었어요. 물론 연주는 지속 들어오면서 완전 절망할 상황들은 아니었습니다. 국립오페라단에서의 연주도 있었고 그 와중 수중에 있던 200만원을 탈탈 털어서 음악회를 기획해서 올리게 됬어요. 그런데 주최가 없던지라 제 이름 석자만 넣을 수도 없고 해서 당시 트랜드가 W호텔, 현대M카드 등 이런 약자가 참 많았어요. 그래서 처음엔 뮤즈의 어원으로 M을 선택했는데요. 이젠 M의 의미를 묻는다면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 있습니다. 오페라 맘대로라고 이야기를 하는편이죠. 관객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Q. 유학 생활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A. 전액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영국에서 받으면서 어려웠던  IMF시절 참 운좋게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영국에서 첫학교를 마치고 다음과정을 생각해 두었던게 아니어서 에이전트를 알아 보았던거도 아니고 다른 학교에 공부를 더하기 위해 시험을 보았는데 장학생으로 가기로 약속 되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그학교의 학과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그만두게 되면서 어려운 상황이 되었어요. 갈피를 못잡다가 그래도 좀 더  해보자는 마음에 일단 레슨을 받으면서 기다렸습니다. 정말 무효였던 상황이었죠. 장학금을 전액을 못받으면 다닐 수 없던 그런 상황 이었거든요. 그런 날들을 보내다가 멘체스터에서 있는 오페라 오디션에 피가로의 결혼 오디션을 보았는데 인생 최초로 프로페셔널 오페라에 그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하게 되었어요. 전화위복이랄까요? 오디션을 끝냈는데 끝까지 기다려달라 하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하게 됐습니다. 벨기에에 가서 세계적 기업의 스폰으로 올라가는 큰 무대에서 무대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어려움이 있으면 좋은일도 있고 그렇다고 또 좋은일이 있던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시금 전액장학생으로 두번째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요. 멀쩡하게 잘나던 소리가  어느날 갑자기 나질않더군요. 그때가 유학4년차였는데 벨기에에서 데뷔를 하고 모든 최고의 조건으로 멘체스터의 왕립음악원에서 1년더 공부를 하자는 요청에 간 자리였는데 소리가 나질 않았어요. 정말 황당하기 짝이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죽어라 연습했습니다. 정말 죽어라 연습했죠. 아침부터 밤11시까지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음악학교 기숙사라 방안의 방음도 잘되어있어서 방안에서 까지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다 졸업할때쯤 다시 소리가 잘 나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는거에요. 좋은일이 있은 후에도 어려움이 있고 또 극복이 되고 인생이란 그런거 아닐까요?

“데뷔까지 한 상황에서 얼마나 절망스러운 나날이었을까? 비온뒤 땅이 더 굳는다는 우리의 옛 속담만큼이나, 교만치 말고 더 나아가라는 하늘의 큰 뜻은 아니었을까?”

“그런만큼 관객과 더욱 가까이 소통하는 그의 음악세계의 진정성을 그 누구도 가볍게 판단치 못하리라 필자는 확신한다.”

Q. 진정한 관객과의 소통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 관객하고 이야하는게 소통이 아니라  관객이 이해할수 있도록 몸짓 눈짓만으로도 관객을 이해 시킬 수 있는게 기본적 소통이라 생각합니다. 몸짓 하나로도 이해 할 수 있는 굳이 말로 표현 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공감 할 수 있는 무대 그게 진정한 소통이라 생각 합니다.

Q. 대한민국에 오페라 시장이 존재 한다 생각 하시나요?

A. 오페라 시장이라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클래식 시장은 아주 조금의 수요가 있어요. 아직 까지도 블루 오션이랄까요? 중요한것은 오랜고민과 도전정신이 아직도 우리 음악계에는 더욱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시스템들이 구축 되어야겠지요. 혼자서 바꿀수는 없습니다. 모두에게 긍정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시스템과 또 우리에게 현재 필요한 수요와 공급이 맞을수있는 그런 시스템들이 개선이 되어야 시장이라 표할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생할 수 있는 산업 그리고 시장을 키워가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리스크를 두려워 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 우리 클래식음악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오페라계에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Q. 어느덧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음악가로 어떤 예술가로 남고 싶으신지요?

A. 본능에 가깝게 답하자면 노래 잘하는 연출가 랄까요 또는 연출 잘하는 성악가 즉 성악가가 저의 정체성입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난뒤에는 오페라를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오페라를 전할 수 있는 오페라 전도사랄까요? 오페라는 동시대에 공존하는 재밌는 하나의 어렵지 않은 문화라는것을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 누구나 하나의 재능도 제대로 발휘 하기 힘든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다재다능함에 우리는 재밌는 오페라 유쾌한 오페라를 누릴 수 있지 않은가? 이젠 영화관에 팝콘과 콜라를 손에 쥐고 달려가듯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마법에 걸린 오페라를 적극 권장한다. 자! 기대 하시라 개봉박두!”